2009년 4월 24일 금요일

[리뷰] 연애소설 읽는 노인

온통 세계가 은빛으로 물들도록 비가 내리고 있다. 기후가 사시사철 따뜻한 이곳은 아마존강 유역의 안쪽 깊숙이 위치한 이딜리오마을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우린 그 불길한 살쾡이의 발자국을 따라 좀 더 밀림의 안쪽으로 들어갈 것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그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제 육순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아직 강인한 눈매엔 그가 한때 같이 생활했다던 원주민 수아르족의 기상이 남아 있고 여전히 억세고 윤기나는 팔뚝은 아직은 그가 자기 손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남성임을 증명하고 있어 어른들은 이번 추격단의 우두머리로 손색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밤마다 자기 전에 이상한 책을 읽을 땐 입을 오물거리며 이를 빼 놓는 것을. 동네 어른들 중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볼리바르노인처럼 사냥을 하거나 이번처럼 중차대한 임무를 맡아 모험을 떠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밀림에서 살았고 사냥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용맹했다는 건 모두 지난 일이다. 이를 빼놓는다니. 더 이상 이가 자기 신체의 일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고기도 뜯지 못하고 음식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소리 아닌가. 그 소린 그가 이젠 이 세상보다 저 세상과 더 친하단 소리 아닌가. 한 발을 저쪽 세계에 담근 자와 이번 일을 같이 한다는 자체가 못마땅하다. 이런 생각을 마을 족장 어른께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행여나 경솔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까봐 어머니께만 넌지시 말했다.

“에난디오, 호세노인의 이가 없는 건 젊어서 술마시고 내기 하다가 그렇게 된거야. 친구들이 그의 남성다움을 증명하는데 마취하지 않고 이를 몽땅 뽑으면 여태 벌었던 재산을 다 주기로 했다나 뭐라나. 바보 같은 짓이지만 취한 김에 호세노인도 그러자고 했댄다.”

그러면 어머니 더더군다나 그런 바보 짓을 했던 사람을 따라 갈 수는 없어요. 이건 목숨을 거는 일이고 나는 살쾡이를 죽이는 이런 바보 같은 원정대에 참가하고 싶지 않아요.

“에난디오. 이건 마을 어른들의 뜻이다. 마을 제일의 사냥꾼인 네가 가야만 우리도 안심할 수 있어. 이 엄마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단다.”

저는 먹기 위해서가 아닌 이유로 동물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옆 집 사람이 죽었는데 우리가 그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그 살쾡이는 새끼를 잃었어요. 나라도 내 자식을 잃고 나면 인간을 미워할 거에요.

내 심장을 주신 나의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으셨다. 그리곤 내 머리를 감싸 안으시더니 나를 위해 성안토니오의 기도를 외우셨다. 용기와 자비를 비는 사냥꾼의 기도이다. 그리곤 조용히 불을 끄고 나가셨다. 어젯밤의 일이다.

오늘은 새벽같이 일어나 마을 공터에 갔다. 그곳에서 다른 사냥꾼들을 만나 밀림 속으로 이동할 것이다. 큰 비가 그치고 난 후엔 일시에 온갖 밀림의 향기가 덮쳐온다. 각종 열대과일과 이름 모를 풀향기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야자수 그늘에 들어가면 이런 향기 때문에 시원하다. 냄새에도 색깔이 있다면 밀림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노란머리앵무새 같을 것이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른 향기가 난다.  

초록안개 속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마을 족장의 뒤뚱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밀림으로 들어가는데 어디서 주워온 건지 모르는 장화를 신고 오다니. 아마 얼마 가지 못하고 버릴 것이다. 곧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노인도 도착했다. 마치 점성술사의 모습처럼 보인다. 몇 백년을 홀로 살아온 사람처럼 고독해 보인다. 잠시 족장의 말이 있고 볼리바르 노인이 사냥할 때의 주의사항에 대해 몇 마디 했다. 이윽고 출발을 알리는 뿔고동 소리가 울려퍼진다.


****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개념적이고 딱딱할줄 알았는데 이 작은 책이 이리도 서정적일 줄이야...

나에게 좋은 책이란 아니 좋은 예술작품이란 그걸 매개로 감정의 울림이 생겨 무언가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림이, 음악이, 글이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말이다.
이 책 <연애소설 읽는 노인>도 그랬다.

이 책을 읽고나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끼와 남편을 잃고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음을 불사한 복수를 감행하는 살쾡이가 안타까워서일까.
아니면 문명을 앞세워 밀림을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복하기만 즐기는 인간의 탐욕에 분노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소설속 아마존 강가로 가 야자수 나뭇잎 얼기설기 엮어 사는 그 안토니오 노인처럼
나도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싶은 동경심 때문일까.

여기 아마존의 한 평화로운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노인이 아마존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그를 지켜보다 자신의 부족에 받아들이는 수아르족의 방식과
항상 정부를 욕하는 치과의사와의 담담한 우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던 어느날 암살쾡이가 백인 사냥꾼을 할퀴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부의 대리자 뚱보 읍장은 미개한 인디오들을 의심한다.
미개한 그들이 물건을 빼앗고자 백인을 죽였다는 읍장의 주장에 안토니오 노인은
그것이 어린새끼를 죽이고 숫살쾡이를 상처입힌 어리석은 백인 사냥꾼에게 복수하기 위한
암살쾡이의 짓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님을 경고한다.

이제 아마존의 한 부락은 위험하다.

살쾡이의 위험으로부터 마을을 혹은 인간으로부터 훼손되어버린 살쾡이의 삶과 죽음을 지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안토니오 노인이 나선다.

줄거리도 아름답지만 마치 그곳에 있는듯, 안토니오 노인의 건강했던 지난날과
밤이면 홀로 호롱빛에 의지해 연애소설을 읽는 적적하지만 자족적인 지금의 삶이 생생하다.
그 삶이 깨어지지 않기를...

지배계급의 이익때문에 문명을 전달한다는 구실로 토착민들의 삶을 짓밟는 정부와
양식을 위해서가 아닌 오락을 위한 살생을 하는 인간의 사냥이 거기서 멈추기를,
그래서 더이상 아름다운 것들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 14개:

  1.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북리뷰만 봐도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데요!

    기회가 되면 한번 꼭 읽어 봐야겠네요..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체조요정 솔이를 만나지 못해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꾹 참으렵니다 ㅎㅎ

    비오고 흐린 주말이지만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보내시길(^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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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읽어보고싶게 하는 리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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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베스트 블로거 등극 추카드려요^^ 큰선물과 더불어 황금펜까지^^ 제가 젤먼저 알려드린거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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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순간 솔이네 블로그가 아니고 딴데 잘못 들어왔나 헷갈렸네요~ ㅋ

    솔이 사진이 없으니 왠지 허전하긴 하지만 리뷰도 멋집니다.



    참, 솔이 엄마가 글을 아주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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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도 황금펜받고 싶어요 ㅋㅋㅋ

    그러나 글쓰는 실력이 안돼서 안되겠죠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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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오 황금펜이 되셨나 보군요. 축하드립니다.^^

    요즘 책을 리뷰하시는 블로거 분들이 늘어 나는군요. 책을 많이 읽는 문화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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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마침 여기 비가오는데,

    왠지 리뷰하고 너무 잘 어우러지는 그런 풍경이라

    리뷰읽고, 혼자 @..@ 먼~~산보고있네요^^;



    읽어보고싶은 책이네요..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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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포스트에 솔이 사진을 보아왔던터라 오늘 포스트가 순간 낯설었습니다만

    유익한 책 소개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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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저두 솔이사진 없어서 긴가민가 했다는...^^;;

    아이들과 있다보면 책읽기가 쉽지 않던데...나만 그런가..^^;;

    저도 한번 찾아서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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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아.. 저도 책을 많이 봐야지라는 생각만 하고..

    잘 안보게 되네요..-_-;;

    그동안 중간고사 기간이라 잘 못들어왔습니다..^^:

    그사이에 황금펜 받으시고!!ㅋㅋ

    정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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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와~ 황금펜촉!! ㅋㅋ 축하드립니다^^

    솔이아빠님 솔이에게 선물을 주셔야할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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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베스트 축하드리고, 저도 황금펜...갖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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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깜딱이야.. 솔이 사진이 없어서 깜딱 놀랐어요.. ^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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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http://fanfic.kr/
    팬픽커에 소설이 많은데 한번 들러보시는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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